AI 사용료가 3년 만에 90% 넘게 떨어졌다는 자료를 보고, 그러면 기업들 지출도 줄었겠거니 했다. 아니었다. 이유를 찾다 보니 1865년에 이미 같은 현상이 관찰돼 있었다.
단가와 총비용은 별개다

당연해 보이지만 실무에서 자주 뒤섞이는 구분부터 짚습니다.
총비용 = 단가 × 사용량
단가가 반으로 떨어져도 사용량이 세 배가 되면 총비용은 1.5배로 늘어납니다. 단가는 분명히 개선됐는데 지출 명세서의 숫자는 커집니다.
여기에 한 겹이 더 있습니다. 우리가 정말 사는 것은 투입물이 아니라 완료된 결과라는 점입니다.
| 보는 기준 | 측정 대상 | 한계 |
|---|---|---|
| 단가 | 투입물 하나의 값 | 몇 개나 쓸지를 담지 못함 |
| 총비용 | 기간 동안의 지출 합계 | 무엇을 얼마나 해냈는지 모름 |
| 결과당 비용 | 일 하나를 끝내는 데 든 값 | 정의하기 까다로움 |
싼 재료를 썼는데 자꾸 실패해서 세 번 다시 만들었다면, 재료비는 아꼈지만 제품 하나당 원가는 더 비쌉니다. 세 번째 기준이 필요한 이유입니다.
1865년의 관찰: 효율이 소비를 키운다
이 현상에는 오래된 이름이 있습니다.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가 1865년 저서에서 제기한 문제입니다.
당시 영국은 증기기관의 효율이 크게 개선되던 시기였습니다. 같은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석탄이 줄었으니, 자연히 석탄 소비도 줄 것으로 기대됐습니다.
결과는 반대였습니다. 석탄 소비는 오히려 급증했습니다.
이유는 단순했습니다. 효율이 좋아지자 증기기관을 쓰는 것이 경제적으로 말이 되는 곳이 늘어났습니다. 예전에는 수지가 안 맞아 엄두를 못 내던 공장·광산·철도에까지 기관이 들어갔습니다. 한 대당 석탄은 줄었지만 기관의 수가 훨씬 더 늘어난 것입니다.
이것을 제번스 역설이라고 부릅니다. 정리하면 이렇습니다.
- 효율 개선 → 단위 비용 하락 → 쓸 수 있는 용도가 넓어짐 → 총 소비 증가
- 수요가 가격에 민감할수록 이 반동이 커집니다. 비싸서 못 하던 일이 많았을수록 특히 그렇습니다.
모든 효율 개선이 이렇게 되지는 않습니다. 이미 쓸 만큼 쓰고 있던 분야라면 절감이 그대로 절감으로 남습니다. 관건은 가격이 내려갔을 때 새로 열리는 수요가 얼마나 되느냐입니다.
AI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

AI 사용료는 처리한 글의 조각 수를 기준으로 매겨집니다. 이 조각을 토큰이라 부르고, 요금은 보통 100만 토큰당 얼마로 표시됩니다.
단가 하락 폭은 상당합니다. GPT-4가 처음 공개된 2023년 3월 요금은 100만 토큰당 입력 30달러, 출력 60달러였습니다. 이후 같은 수준의 성능을 훨씬 낮은 값에 쓸 수 있게 됐고, 하락 폭은 90%를 훌쩍 넘습니다.
그렇다면 기업들의 AI 지출도 90% 줄었을까요. 그렇지 않았습니다. 이유가 제번스 역설과 정확히 겹칩니다.
| 싸지기 전 | 싸진 뒤 |
|---|---|
| 비싸서 핵심 기능에만 제한적으로 | 고객 응대·문서 요약·코드 작성 등 적용 범위 확대 |
| 질문 하나에 답 하나 | 답하기 전에 길게 따져보는 방식 확산 |
| 사람이 부르면 한 번 실행 | 여러 단계를 스스로 반복하며 실행 |
특히 두 번째와 세 번째가 큽니다. 최근의 방식은 답을 내놓기 전 내부적으로 여러 경로를 검토하는데, 이 과정에서 토큰을 훨씬 많이 씁니다. 한 번이 싸지자 더 길게, 더 여러 번 생각시키는 쪽으로 사용이 옮겨간 것입니다.
단가가 10분의 1이 되어도 한 작업에 쓰는 토큰이 20배가 되면, 그 작업의 비용은 오히려 두 배가 됩니다. 증기기관과 같은 구조입니다.
그래서 지표가 바뀐다
단가로는 상황을 설명할 수 없게 되자, 업계에서 쓰이기 시작한 기준이 "쓸 만한 품질로 작업 하나를 끝내는 데 든 비용"입니다. 성공한 작업당 비용, 지불한 돈당 얻은 성능 같은 표현으로 불립니다.
이 기준으로 보면 직관과 어긋나는 결과가 자주 나옵니다.
- 토큰 단가가 싼 모델이 자꾸 틀려서 여러 번 다시 시키고 사람이 손봐야 한다면 → 작업당 비용은 비쌈
- 토큰 단가가 비싼 모델이 한 번에 정확히 끝낸다면 → 작업당 비용은 오히려 쌈
즉 단가가 싼 것과 저렴하게 일을 끝내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. 재시도 횟수, 사람의 검수 시간, 실패했을 때의 대가까지 넣어야 비교가 됩니다.
이 지표가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. 측정 방식이 바뀌면 무엇이 경쟁력인지도 바뀌기 때문입니다.
경쟁력이 옮겨 앉는 자리
성능 좋은 모델을 누구나 비슷한 값에 쓸 수 있게 되면, 모델을 쓴다는 사실 자체는 차별점이 되지 못합니다. 그때 갈리는 것은 같은 일을 얼마에 끝내는가입니다.
여기서 원가 구조가 나뉩니다.
| 구조 | 결과 |
|---|---|
| 모든 요청을 최고급 모델 하나로 처리 | 쉬운 일에도 비싼 값을 지불. 가격이 내려가도 그 모델이 내려야만 혜택 |
| 난이도에 따라 모델을 갈아 끼움 | 쉬운 일은 싼 모델로. 어디선가 값이 내려가면 즉시 흡수 |
뒤쪽 방식을 흔히 모델 라우팅이라 부릅니다. 요청의 난이도·사용자 등급·예산 한도에 따라 처리할 모델을 골라 보내고, 확신이 부족할 때만 더 강한 모델로 넘기는 식입니다.
이 구조가 성립하려면 측정이 먼저여야 합니다. 어느 모델이 어떤 일에서 몇 번 만에 성공했고, 재시도가 얼마나 났고, 실제로 얼마가 나갔는지를 알아야 다음 요청을 어디로 보낼지 정할 수 있습니다. 그래서 비용을 추적하는 일 자체가 하나의 역할이 됩니다.
정리하면 층이 세 개입니다. 모델을 만드는 층, 어디로 보낼지 정하는 층, 결과와 비용을 재는 층. 단가가 평준화될수록 아래 두 층의 몫이 커집니다.
다만 여기서 조심할 대목이 있습니다. 이런 기능이 회사 전체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개 공개되지 않습니다. 서사가 그럴듯하다고 해서 그 서사가 실적으로 얼마나 들어오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.
그래서 무엇을 확인해야 하나
원가가 빠르게 떨어지는 산업을 볼 때 점검할 항목으로 정리합니다. AI만이 아니라 태양광·배터리·물류·클라우드처럼 단위 비용이 계단식으로 내려간 분야에 같은 방식으로 적용됩니다.
- 단가 하락을 곧바로 비용 절감으로 읽지 마세요. 총비용은 단가 × 사용량입니다. 사용량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같이 봐야 합니다.
- 새로 열리는 수요가 있는지 보세요. 비싸서 못 하던 일이 많았던 분야일수록 절감분이 소비 증가로 되돌아갑니다. 이미 충분히 쓰던 분야라면 절감이 절감으로 남습니다.
- 결과당 비용으로 환산해 보세요. 실패율과 재작업, 사람이 손보는 시간까지 넣어야 실제 비교가 됩니다. 투입물 단가만 보면 자주 뒤집힙니다.
- 공급자가 아니라 사용자 쪽도 보세요. 원가가 내려가면 그 자원을 파는 쪽보다 싸게 쓰는 법을 아는 쪽의 마진이 개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.
- 서사와 실적의 거리를 확인하세요. "이 흐름의 수혜자"라는 설명이 맞더라도, 해당 사업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으면 주가에 이미 반영된 기대가 실적보다 앞서 있을 수 있습니다.
- 효율 개선이 언제 절감으로 남는지 구분하세요. 수요가 가격에 둔감해지는 지점, 즉 쓸 만큼 다 쓰게 된 뒤부터는 단가 하락이 그대로 이익이 됩니다. 그 전환 시점이 관전 포인트입니다.
제번스가 본 것은 석탄이었지만 구조는 그대로 반복됩니다. 싸지면 더 쓴다. 그래서 원가 하락 뉴스를 볼 때 먼저 던질 질문은 "얼마나 싸졌나"가 아니라 "싸져서 무엇을 더 하게 됐나"입니다.
※ 본 콘텐츠는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정보 제공용 글이며, 특정 종목의 매수·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. 인용된 가격 정보는 작성 시점 기준으로 이후 변동될 수 있습니다.
핵심 내용 정리
- AI 사용료의 단가는 3년 만에 90% 넘게 떨어졌습니다. 그런데 기업들의 AI 지출은 줄지 않았습니다.
- 싸지면 더 많이 쓰기 때문입니다. 효율 개선이 소비를 늘려 절감분을 상쇄하는 이 현상은 1865년에 이미 관찰됐습니다.
- 그래서 경쟁의 축이 "얼마나 싼 걸 쓰나"에서 "같은 일을 얼마에 끝내나"로 옮겨가고 있습니다.
이 구조는 AI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. 원가가 급락하는 산업을 볼 때 단가 하락을 곧바로 비용 절감으로 읽으면 어긋나는 이유를 정리합니다.
